[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21 : 나와 같기를

← 20화, 용기 (3/3)

원문 : (link)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나왔을 때보다 편안한 분위기였다. 다만 조금은 덜 편한 주제로 머릿속이 바쁜 짐이었다. 예를 들면 스팍이 너무 심하게 매력적이라거나. 단추 꽉 여미고 답답하게 있는 대신에 구겨지고 여기저기 흙이 묻어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짜 미치도록 섹시했다… 하지만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흙구덩이에서 구르다 온 모습으로 엄마의 집까지 가야 한다는 의미기도 했다. 옆에 비슷한 모양새로 음심이 드는 남자를 데리고. 그것도 벌칸을.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꼴로 나란히 집에 다다르고 나면 엄마한테 어떻게 설명을 해야 좋을지 도저히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꼴인 게 다 이유가 있으니 찔리기도 했고.

게다가 아직 얘기가 다 끝난 게 아니었다. 피차 둘 다 관계 문제에 있어 쑥맥들인지라, 서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우왕좌왕하고만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다 하더라도 겁을 먹고 섣불리 어쩌지 못하는 걸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건, 중요한 부분에 있어 서로의 의견이 맞았다는 게 마음을 놓이게 했다.

그보다는 덜 무서운 문제들 중, 확실히 답을 들어야 할 부분도 있었다. 짐은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물어봐야 할 것 같아. 어젯밤에 스타플릿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 생각이 바뀌진 않았어? 지금도 원해?”

스팍은 그렇다고 했다. “이미 정해져 있는 미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에 여전히 반사적으로… 불쾌함이 들긴 하지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구. 너는 이미 네가 원한다면 너만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걸 입증했어. 넌 스스로 선택을 한 거야.”

“그럼에도 이전의 선택지와 동일한 상황으로 돌아왔어. 이번에도 기회를 무른다면, 또다시 내가 스타플릿에서의 복무와 견디기 힘든 삶 사이를 선택할 기회에 놓이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글쎄. 하지만 내가 보기에, 내 최고의 일등항해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너에게 있다면 그게 바로 네 운명인 거 아닐까? 내 최고의 일등항해사가 되는 게. 그러니까 네가 바라는 게 네가 만들 운명의 일부라는 거야.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도 앙심이 있다고 거절해 버리는 건 말이지, 상당히 비논리적인 거거든.”

스팍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동의해. 하지만, 짐. 그 ‘운명’에 관해서 당신이 알아야 할 점이 있어.”

“뭔데?”

“우후라 대위.”

그랬다. 짐도 스팍의 기억 속에서 스팍 대사가 한 얘기를 들었기에 알 수 있었다.

“…그치만 오래된 일이잖아. 내가 보기에 우후라는 지금으로도 꽤 만족스럽게 사는 것 같던데. 그리고 저번에 너랑 통화했을 때도, 네가 지구에 있는다고 하니까 잘 됐다고 했잖아.”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 연락하길 원했어.”

짐은 빙그레 웃었다.

“왜냐면 우후라는 원래 그렇게 곰살맞거든. 어찌나 발이 넓은지 온 함선에 있는 사람과 다 친구 먹고 다닌다니까. 어쩌면 스타플릿에 있는 사람 전부와도 친할지도 몰라.”

“내가 엔터프라이즈에 남기로 했었다면 우후라와의 관계를 끝낼 이유를 전혀 찾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 내 흡족함과 별개로 퍽 논리적인 결합이었으니까. 그녀에게 정이 들어 있기도 했고… 정직하게 말해 지금에 와서도 우후라는 내게—”

“저기, 스팍.”

짐은 스팍의 말을 막았다.

“잊었어? 나는 운명 같은 거 믿지 않아. 내가 믿는 건 자유 의지야. 그러니 엔터프라이즈로 돌아갔을 때 너와 우후라가 다시 시작하고 싶어진다면 그것도 네 선택이라는 거지. 이해할 수 있어.”

“나는 당신에게 감정적인 고난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

“알아, 나도. 널 믿고 있어.”

짐은 그에게 웃어주었다. 솔직해지자면, 스팍과 시작해 보려는 이 관계, 아직 무어라고 형용할 수는 없지만 끝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되어버리면 무너지고 말 것 같았다.

“하지만 수없는 만남이 있는 만큼 헤어짐도 많을 수밖에 없잖아. 그러더라도 나 안 죽어.1 게다가,”

그는 우쭐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난 네 눈길을 잡아둘 자신이 있걸랑. 우후라, 멋진 여자지, 맞아… 하지만 난,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거든.”

“확실히 그래.” 스팍이 대답했다. “당신은 눈길을 끌어당기는 재주가 탁월하지.”

“선척적인 재주랄까. 그건 그렇고…”

저 멀리 시야에 엄마의 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무슨 핑계를 대야 스팍과 이 꼴을 하고 있는지 설명을 할 수 있으려나 떠올리지 못한 채였다.

“…엄마한테 뭐라고 하지? 밭에서 네가 관찰을 하는 동안에 같이 넘어졌다거나, 뭐 사고가 났다고 하면 엄마가 믿으려나?”

“아니.”

“그렇겠지.”

한숨을 쉰 짐은 좀 더 나은 핑계를 찾아 계속 고민해 보았다.

“예전엔 이런 일을 할 때마다 늘 나 혼자 집에 돌아갔으니까, 엄마한텐 싸움을 했다는 식으로 둘러대면 됐는데. 뭐 집에 엄마가 있을 때의 얘기지만… 그땐 늘 싸움질을 하고 다녀서 별로 이상할 것도 없었거든.”

“우리가 싸웠다고 하는 건 별로 그럴듯한 얘기가 아니야.”

“그러게. 제일 슬픈 건 뭔지 알아?” 짐은 시무룩하게 불평했다. “집에 우리 둘만 있는 게 아니라서, 샤워도 같이 못 한다니까. 시간 절약도 되고 좋을 텐데.”

“오늘 아침에도 얘기했지만, 당신은 더 이상 어머니에 의존하는 나이가 아니야. 관계하는 상대에 대해 비밀로 할 이유는 없어.”

“알아. 그래도 ― 우리가 뭘 했는지 엄마에게 굳이 알릴 필요가 있을까?”

한쪽 눈썹을 올린 스팍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여튼 네 말이 맞아. 괜히 숨겨야 할 건 없지. …엄마가 물어보지 않는 한은 가만히 있는 걸로 하자. 내가 주의를 끌고 있을 테니까 엄마가 눈치 채기 전에 먼저 위층으로 올라가서 씻어. 너 나보다 상태가 안 좋거든.”

흙 위로 자빠뜨리기 전에 셔츠부터 벗겼어야 했던 건데. 뒤늦게야 후회가 들었다.

“그렇게 할게.” 대답한 스팍은, 손을 가까이 가져오더니 짐의 머리에서 말라붙은 잎사귀를 떼어주었다.

조금 수줍어졌다. “…그리고 나도 씻고 나면, 스타플릿에 연락하자. 이렇게 해도 괜찮겠지?”

스팍은 고개를 주억였다. “그럴 것 같아.”

집에 거의 다다라 있었으므로 지금 스팍에게 입을 맞추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 같았다. 자칫 잘못해 어색해질 일은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다행히도, 근사한 대안이 있었다. 스팍이 손을 내어 두 손가락을 폈다. 짐도 따라서 손가락을 펴 스팍에게 가져다 대면서, 살그머니 웃음지었다.

“이거 멋진데. 언제든지 키스할 수 있는 거네. 게다가 우리가 뭘 하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그럴 지도. 하지만 당신의 어머니는 벌칸 문화에 정통하니 우리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실 테지.”

“그렇지.” 한숨이 나오는 짐이었다.

엄마 몰래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은 역시 너무 큰 기대였다. 엄마는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식탁에 있었다. 짐은 당황하지 않고 계획대로, 먼저 들어가기로 했다. 그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면서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바탕 걷고 오니까 좋네요. 햇볕도 쬐고. 엔터프라이즈가 그립긴 하지만 이게 또 함선에서는 못 누리는 지상의 특권이란 게 있잖아요, 그쵸?”

“그렇지.”

노력이 무색하게도 엄마는 눈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담고 그의 뒤에 따라 들어오는 스팍을 바라보았다.

“어서 와. 상의는 다 마친 거니?”

“짐과 의견 조율을 했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커크 부인.”

스팍은 부드럽게 대답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전부 털어놓고 상의했어요. 얘기하고 보니까 서로 뜻이 비슷하더라고요.”

짐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머릿속으로 이 다음 취할 전략을 그려봤다.

“그런 다음에 같이 산책이나 좀 더 했어요. 날씨가 좋아서.”

엄마가 물었다. “짐? 밖에서 스팍이랑 무슨 일 있었니?”

“왜 이 꼴로 돌아왔냐는 뜻이죠? 그게 좀, 민망한 얘긴데.”

그는 물을 한 모금 더 마시며 뜸을 들였다. 좋았어. 이정도면 자연스러운 듯 하다.

“스팍에게 옥수수 밭을 보여주러 갔거든요. 벌칸에는 옥수수가 없어서요. 음, 엄마가 저보다 잘 알겠네요. 암튼 스팍은 과학자라서 호기심 발동해서는 가까이 가서 보고싶어했죠. 그러다가… 작은 사고가 난 거랄까.” 또 한 모금 마셨다. “전부 제 잘못이에요.”

“왠지 놀랍지가 않은걸.”

엄마는 빼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위층의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배경으로 짐도 그럭저럭 웃었다.

스팍이 빠르게 끝내서 짐의 차례가 돌아왔다. 목욕을 마치고 난 뒤,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할 시간이 되었다. 두 사람은 서재로 갔다. 야심찬 기세와 달리 실은 별다른 계획이 없는 상태였다.

“우선 네가 스타플릿에 바로 복귀가 가능한지 알아보자. 나왔을 때 그대로의 위치로 바로 복귀할 수는 없을 테고…”

“명예퇴직으로 스타플릿을 나왔으니 복귀에 특별히 장애가 될 만한 사항은 없어. 그러나 장기 휴직이 아닌 완전한 사임이기 때문에, 복귀에 일정한 절차가 뒤따를 거야. 신병을 모집할 때와 마찬가지로 내 신원과 배경 확인을 할 테고, 복무에 적합한 지식과 능력을 여전히 갖추고 있는지 평가하는 단계를 거쳐야 해.”

“이미 계획이 다 짜여져 있네. 내가 없어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평가를 거치게 된다면 현직 함장이 뒤에 버티고 있는 건 좋은 그림이 아닐 것 같아. 마치 내가 평가에 입김을 넣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렇지. 하지만 미리 걱정을 하기보다 일단은 단순하게 스타플릿 인사부에 내가 복귀할 의사가 있음을 통보하는 일이 먼저겠어. 추천서 역시 준비해야 하고. 당신이 그 추천인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해.”

“당연하지.” 두말할 것도 없다.

“파이크 제독님께서도 추천서를 써 주실 거야. 또 제독님 권한으로 필요한 정보를 주실 테니 가장 먼저 제독님에게 연락을 하는 편이 우선이겠어.”

짐은 동의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아카데미 근처의 술집에서 마주쳤을 때 파이크가 스팍의 상황에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기억했다.

“네 소식을 들으면 그 분이 분명 기뻐할 거야.”

“그러실 테지. 제독님은 차기 고용주들에게 이력 확인이 필요할 때마다 증인으로 서주셨기에 내 취업 문제에 대해 알고 계셨어. 신원 확인 요청이 잦아지면서 자주 내게 스타플릿으로 돌아오라고 긴히 청하시기도 했고.”

“네 상황을 제독님도 알고 계셨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연락을 취하고 있었으니까. 내 상황이 그런 것을 보면 제독님이 마음이 좋지 않을 테니, 소재지가 정확치 않아진 후로는 차라리… 그분과의 접촉을 피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어. 그 부분에 대해서 사과드리는 편이 적절할 것 같아.”

“네가 돌아오는 게 그분에게는 최고의 사과가 될 거야.”

짐의 말에 스팍은 고개를 주억여 동의했다.

역시나 파이크는 이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스팍에게 전폭적인 협조를 약속했고, 그 자리에서 정식 절차를 위한 자료를 보내주었다. 더없이 진심어린 모습이었다. 그는 잠깐이지만 짐에게 자랑스러운 눈길로 감사를 건넸다.

“복귀를 환영하네, 소령.”

“감사합니다.”

스팍이 인사에 답했다. 짐도 옆에서 감사를 전했다. 하지만 스팍이 복귀를 결심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나면 저렇게 싱글벙글할 수 있을까, 남몰래 궁금해진 그였다. 스팍이 이어 말했다.

“그러나 저를 예전의 직함으로 지칭하는 일은 시기상조인 듯 합니다. 제 기억대로라면 의무적으로 거쳐야 할 관례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스팍, 내가 자네를 아네. 내가 보증할 수 있어.” 파이크의 태도는 확고했다.

“저는 5년 넘게 현직에서 물러나 있었습니다. 그간 진보한 기술의 발전에 맞추어 스타플릿의 규정 및 의례에도 개정 및 증축이 있었을 겁니다.”

“자네 인생 처음으로 만점은 받지 못하겠군.” 파이크는 흥,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걱정하진 말게. 하지만 짐, 자네가 스팍과 있으면 부당한 혜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오, 걱정 마세요. 전 옆에서 살짝 비켜줄 거니까요. 스팍은 원칙대로만 해도 전혀 문제없을 겁니다.” 짐이 대답했다.

통화가 끝난 후 스팍은 후견인 크리스토퍼 파이크 제독과 제임스 커크 함장의 이름으로 재복무 신청을 넣었다. 한 쪽은 첨부 파일을 통해 추천 의사를 밝혔고 다른 한 쪽은 영상통화로 지원서를 제출하는 동안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배경 조사는 딱히 주목할 만 한 건이 나오지 않아 빠르게 끝났다. 다만 뉴 벌칸 행성에서 떠난 후의 일과 연구직에서 근무했던 짧은 기록에 대해 질문이 들어왔는데, 스팍은 단순한 개인적 사정에 의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순식간에 모든 게 끝나고 마지막으로 평가 시험 일정이 정해졌다. 이 말인즉슨 스타플릿 공무 시설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스팍은 행정을 담당한 사무원에게 감사를 표한 뒤 통신을 종료했다. 짐은 어깨를 으쓱이며 그에게 웃어보였다.

“자. 이걸로 끝이야. 간단한걸.”

스팍의 얼굴은 반응이 없었다. 웃는 듯 아닌 듯, 요즘 짐이 익숙해져가는 그 미묘한 표정도 아니었다.

“그래. 그렇군.”

그는 그다지 즐거워 보인다고 할 수 없었다. 왜인지 이유를 알 법도 했다. 스팍이 논리가 아닌 감정을 기반으로 결정을 내렸고, 그걸 아주 잘 자각하고 있다는 걸 짐도 이해했다. 그가 기운을 내도록 격려를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도 위의 저 사실이 떠오를 것 같아서, 말 대신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고개를 살풋이 끄덕인 스팍은 손가락으로 짐의 손을 살며시 쓸었다.

“…앞으로 정말 재미있을 거야.2

잠시 이렇게 있으면서 그에게 속닥였다. 스팍의 목소리도 따라서 조용했다.

“그렇겠지. 그런 예측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어느 정도 있어. 그러나 당장은, 걱정이 아주 없지는 않아. 당신 역시 그렇고.”

깜빡했다. 터치 텔레파시 능력이 있었지.

“그렇긴 해… 그래도 같이 해나갈 수 있어. 물론, 이게 정말로 네가 원하는 거라는 전재 하에.”

스팍은 정말로 이걸 원하는 걸까, 짐에게 있는 걱정의 절반은 그 부분이 차지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스팍 스스로의 걱정이기도 했다.

그러자 스팍은, 맞잡은 짐의 손과 깍지를 끼고 꼭 쥐었다. 터치 텔레파시가 쌍방향 작용이 아니라는 게 참 아쉬웠다.

“원해.”

이제 본론으로 돌아갈 때였다. 이어진 손을 풀면서 짐은 말을 이었다.

“이제 시험만 남았어. 리버사이드에 조선소가 있긴 하지만, 지원 절차를 밟으려면 거기서 또 아카데미까지 실려 가야 돼. 여긴 신병 시설이 없거든. 캘리포니아 아카데미로 곧장 갈 수도 있고, 아님 다른 곳에서—”

“익숙한 환경이 더 나을 테지. 그것보다는, 플릿에 복귀하기로 정했으니 내게 일자리를 제공한 회사에 통보를 해야 해. 오늘 도착하지 않는다고 알리긴 했지만 협의를 마치기 위해 나를 기다릴 거야.”

“그래, 좋은 생각이야. 전화해서 뭐라고 하려고?”

“시간을 내 준 데 감사를 전하고, 갑작스런 통보에 사과드리며 뜻하지 않은 기회가 생겼다고 해야지.”

짐이 코웃음을 치자 스팍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뜻하지 않은’, 이라고, 스팍?”

“스타플릿으로 복귀한다는 이야기는 굳이 언급하지 않을 거니까.”

왜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냥 스팍의 결정을 이해하기로 했다.

“헤. 알았어, 그건 뭐 알아서 하고… 이제 본즈에게 연락해야겠다. 네가 내일 가지 않는다고 알려줘야지. 본즈한테 좋은 소식을 전해줘도 될까?”

“내 복귀에 대해 말하는 거라면 물론 동의할게.”

스팍이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넌 모를 거다. 다른 좋은 소식도 본즈가 이미 눈치 챘다는 걸.

짐은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걸었다. 본즈의 첫 반응이 시큰둥한 것도 놀랍지가 않았다.

“그래서, 엔터프라이즈에 태울 생각인 거지?”

“내가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해?”

빙그레 웃으며 묻는 짐에게 본즈는 툴툴댔다.

“스팍이 엔터프라이즈에 안 온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 차라리 잘 됐지. 내가 곧 그 놈의 의사 노릇 할 테니. 나중에 그 머릿속을 한번 검사해 보고 싶거든.”

“뭐어? 스팍이 스타플릿에 돌아오는 게 논리적이라고 네 입으로 그랬었잖아?”

“그 얘기가 아냐. 그건 다른 일이고. 아침에 네가 얘기했던 거에 대해 말하는 거다. 짐, 솔직히 말해봐. 그 놈을 데려오려고 일부러 꾀어냈다거나 그런 거 아니겠지? 응?”

그런 말을 들으니 솔직히 기분이 좀 상했다.

“하아… 본즈, 네가 더 잘 알면서 왜 그래.”

“알지, 나도 알아. 이해가 안 가서 그래. 일주일 전만 해도 스타플릿엔 안 돌아간다고 못을 박았지 않았느냐고. 그럴만한 이유니 하는 게 있다면서.”

“아침에 그 이유에 대해서 얘기를 해봤어. 사실은 자기도 계속 돌아오고 싶었대… 스스로 선택을 한 걸로 결정한 거 같아.”

본즈는 수수께끼를 들은 사람처럼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머리를 털었다.

“어찌됐건, 정말로 엔터프라이즈에 승선한다고 하면야 난 환영이야.”

본즈는 결국 한쪽 입꼬리를 들어 웃어버렸다.

“그 외에는 뭐, 너희 둘… 잘은 몰라도 니들이 바라던 걸 찾았으면 좋겠다.”

짐도 웃었다. “고마워.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간 도와줘서 고마웠어. 스팍이 그 회사에 남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덕분에 그 사이 스팍이 마음을 많이 연 것 같아.”

“득 된 사람이 있다면야 다행이고. 계속 연락 해, 알았지?”

“네가 원한다는데 거절할 수야 없지.”

히죽 웃는 짐의 얼굴에, 돌아온 본즈의 한 마디였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네녀석이 무슨 소릴 할 것인가에 따라 ‘원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본즈와의 통신을 종료한 후 짐은 이제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보았다. 스팍의 복귀 소식에 기뻐할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스팍이 자신에 대한 얘기를 전해도 신경 쓰지 않을만한 사람을 짚어보니 한 명 나오긴 했는데… 스팍 대사가 질문을 쏟아 부으면 상황이 어색해질 것 같았다. 찔리는 게 있다 보니, 짐은 난감한 질문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짐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정해진 일들은 이랬다. 첫 번째, 스팍은 시험 일정을 잡게 된다. 두 번째, 스팍이 어째서 아침에 비행 편을 타지 않았는지 엄마에게 언제까지고 숨길 순 없었으니, 자진신고를 해야 했다.

엄마도 같은 생각이었던 듯 했다. 거실에 다시 세 사람이 모이게 되었을 때 엄마는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전부 정리 된 거니?”

“우선사항의 일들은 모두 완료했습니다.”

엄마는 스팍에게 질문할 때마다 줄곧 대단히 에두른 표현을 썼다. 그에 따른 스팍의 대답도 못지않게 뜬구름이었다. 이것 역시 벌칸의 문화적 특징인 걸까. 물론 짐은 벌칸이 아니었고,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스팍. 어떻게 되어가는 일인 건지 엄마가 궁금해 하실 거 같아.”

내뱉고 나서 보니 저 표현도 빙 돌려 말한 거라, 어떤 대답이든 가능했다. 하지만 스팍은 짐이 의도했던 뜻대로 얘기했다.

“스타플릿으로 복귀를 결정하고, 엔터프라이즈에서의 수행을 지원했습니다.”

엄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져갔다. 짐은 덧붙였다.

“그리고 직통으로 합격했죠. 지원서를 넣자마자.”

“지원할 자격이 생기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거야.

스팍이 그를 보고 말했다.

“내일부터 평가시험을 보게 되겠지만 그와 별개로, 지위 복귀를 포함해 신병으로 지원하는 사람보다 복잡한 절차가 필요해.”

“상관없어. 난 네 지원서 들어오는 것만 기다릴 거거든.”

엄마는 무척 기뻐했다. “정말 잘 됐어. 분명 스팍 넌 스타플릿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짐에게도 그렇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재시험을 보러 간다고?”

짐이 대신 대답했다. “아카데미로요. 하루 미뤄진 것만 제외하면, 공항은 역시나 가게 됐네요. 아침에 일찍 나가려고요.”

“짐, 너도 가니?”

대답하기도 전에 스팍이 선수를 쳤다.

“외람된 말이지만, 나 혼자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봐. 심사 과정에 조력을 줄 수 없으니 함께 갈 이유가 없지.”

짐은 머뭇했다. 같이 가고 싶은 이유야 많았지만, 엄마 앞에서 얘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 하지만―”

“더욱이, 어머님께서도 당신과 단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좋아하실 거야.”

온통 맞는 말뿐이었다. 리버사이드에 온 후로도 스팍과 있느라 엄마에게 온전히 시간을 쏟은 적이 많지 않았다. 엄마도 옆에서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모처럼 조용하게 휴식다운 휴식을 하는 편이 좋지 않겠니? 그렇잖아도 머잖아 온 우주를 바쁘게 돌아다니게 될 테니까. 스팍과 함께.”

양쪽에서 맞는 말만 하니 반박할 구석이 없었다. 스팍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 지금 떨어져도 곧 만나게 되리라는 걸 알았으니까. 본즈의 말이 맞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스팍을 데리고 오고 싶어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일이 잘 풀려가서 마음이 놓였다. 한편 스팍은 저녁 내내 평소와 한 치 다름없이 예의바르고 무표정한 벌칸이었다. 그러다 스크래블 게임을 하고 난 후 이튿날 일찍 떠나야 한다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를 파했다. 오늘 스팍은 게임에서 졌다. 이번엔 벌칸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거려나.

그는 기운이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스팍은 벌칸이고 벌칸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어쩌고저쩌고, 아무튼 벌칸이니까. 게다가 엄마가 바로 옆에 앉아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스팍에게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보일 순 없었다. 짐은 텔레파시 능력자가 아니지만 스팍이 이 결정에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느꼈다. 그 사실이 어쩐지 신경쓰였다.

스팍이 올라간 후 엄마와 단둘이 남아 영화를 봤다. 어렸을 때 좋아하던 영화라 수십 번은 봐서 내용을 다 알기 때문에 대신에 머릿속을 바쁘게 부유했다. 눈만 화면에 있었지, 앉아있는 내내 스팍 생각만 들었다. 좋은 선택을 한 거라고 스팍에게 확신을 보여줄 수 있을 만한 증거가 있으려나, 고민하면서.

그 후, 엄마는 소파 등받이 너머로 몸을 틀어 위층으로 올라가려던 그를 불러 세웠다.

“짐? 스팍이 한 결정, 너는 만족하니?”

…방금까지 좀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그 질문을 들은 것만으로 정신이 확 깼다. 그는 믿을 수 없단 얼굴로 엄마를 봤다. 믿을 수가 없었고, 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정해지지 않은 불확실함 사이에서 불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짐은 이런 행운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놀라웠다.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농담이죠? 제가 함장이 된 첫날부터 스팍이 엔터프라이즈에 돌아오길 바랐다고요.”

“그래. 그럼 다행이구. 그냥 확실히 하고 싶었어.”

“확실해요.”

자신의 안에 견고한 확신이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일깨워준 엄마에게 고마웠다. 엄마에게 가서 가볍게 포옹해 주었다.

“고마워요, 엄마.”

위층에 다다랐을 땐 샘의 방 조명이 꺼져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짐은 옷을 갈아입고 잘 준비를 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스스로의 선택을 걱정하는—정확히 말해, 거기에 자신의 선택권이 있기는 했는지 회의를 느끼는—벌칸을 달래려면 논리적으로, 옳은 선택을 했다는 증명으로 확신을 주는 방법뿐일 거다. 하지만 그런 방법 같은 게 있을 리가. 심지어 스팍 대사가 엔터프라이즈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는 말에는 여기서 스팍과 자신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이 포함되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스팍이 우후라와 다시 잘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라면 몰라도. 스팍 대사는 그 주제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뭐 벌칸인들은 감정적인 문제에 대해 남에게 얘기하는 법이 없으니, 사귀었던 여자나 나아가서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마저도 사적인 것으로 입 꼭 다물고 있는다 해도 놀랍지가 않았다. 다만, 전에 스팍 대사의 기억을 봤을 때 그쪽 일이 잘 풀렸다는 암시를 받았었다. 그렇다고 짐은 스팍이 자신에게 진 빚을 빌미로 우후라 대신 자기 곁에 있도록 할 사람이 아니었다. 당연하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되건, 스팍이 스스로의 결정을 내리면 짐도 그것을 지지해줄 요량이다.

어찌 되었건, 스팍이 마음이 편해지도록 뭐라고 하고 싶은데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벌칸을 어떻게 위로하는지 몰랐으며, 솔직히 사람을 위로하는 법 자체에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스팍은 반이 인간이고… 자신은? 그냥 인간이다. 짐은 잠깐 생각해 보다가, 조명을 껐다.

아래층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서, 조용히 형의 방으로 향했다. 스팍이 자고 있다면 깨우고 싶지 않았기에, 노크를 하는 대신… “스팍?”하고 속삭였다. 벌칸의 청력에 기대해 보기로 했다.

벌칸만큼의 청력은 없어도 이윽고 들려오는 소리는 알 수 있었다. 이불이 사각거리는 소리, 문으로 다가오는 희미한 발소리. 문이 살며시 열렸다. 조금 놀란 얼굴로 밖을 내다본 스팍은, 머리칼이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

“왜…?”

“자고 있었어?”

흠, 벌칸의 청력이 이 정도로 좋을 줄이야.

“아직 잠들지는 않았어.”

“잘 됐네.” 내뱉고 나서 말을 물렸다. “으음, 잘 된 게 아닌가. 들어가도 될까? 아니면 그냥… 돌아가야 하나?”

스팍은 조금 머뭇거렸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그는 그러면서 뒤로 돌아가 알람시계를 꺼두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당신 어머니가 아직 깨어 있어. 혹여라도…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간 수상하게 생각할 거야.”

짐은 조금 웃었다. “그것 때문에 온 거 아니야.”

스팍은 조용히 나와 방문을 닫고, 뒤를 따라 짐의 방으로 같이 들어갔다.

“아직 잘 생각이 아니었던 모양이군.”

“응.” 대답하면서 문을 닫았다. “일단은, 내가…”

막상 스팍이 앞에 있으니 뭐라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일을 남에게 부탁해본 적이 없었다. 어색하고 좀 유치한 기분도 들지만… 같은 이유로 스팍의 마음 역시 안심시켜줄 수 있다면 차라리 자신이 부끄러운 편이 나았다. 자신은 ‘인간’이라는 핑계를 대면 그만이니까. 짐은 침대에 앉아, 적당히 거짓으로 둘러댄 운을 띄웠다.

“…저기. 널 안심시켜주거나 할 필요 없다는 거 알아. 벌칸이니까. 하지만 난 벌칸이 아니야. 우리 사이에 시작한 일들… 나한텐 전부 새로운 거라, 약간은 낯설기도 해. 아무튼 어떻게 되어가든간에…”

사실 이 부분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낯간지러운 것도 당연했다.

“여기서 같이 밤을 보내줬으면 해서.”

스팍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옆에 와 앉았다.

“인간들은 파트너와 긴밀한 접촉을 통해 안정감을 느낀다고 하니… 논리적인 일이야.”

스팍은 그의 말을 꿰뚫어본 거다. 뭐, 그런 거라면 어울려 주기로 하는 기색이니 이쪽은 환영이었다.

“그런 거 같아.”

등을 대고 누운 짐의 옆으로 스팍이 조심스럽게 자리를 틀었다. 단지 자기 위해 남과 눕는 건 섹스보다 까다로웠다. 본능에 몸을 맡기던 때와는 달랐기에 서로의 다리며 어깨며 팔이 어색하게 부딪혔다. 그의 머리카락이 콧잔등을 간질였고, 타인의 팔다리가 몸에 얹혀서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의견을 조율하고 자세를 틀어서, 마침내 서로에게 가장 편한 자세를 찾을 수 있었다.

스팍의 품으로 조금 파고들었다. 자신의 안정감을 위해 여기 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스팍이 가까이 있음을 느끼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스팍도 그렇게 느끼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을 담아 강하게 발산했다. 온 몸이 서로 닿아 있으니 스팍이 느끼지 못할 리가 없을 거다. 안도 받고 싶은 마음을, 그가 알아줬으면 했다.

스팍의 손이 올라와 자신을 껴안은 짐의 팔을 쓰다듬었다. 그런 후 그 손이 어깨로, 뺨으로 다가왔다. 손가락이 닿은 모양으로 스팍이 무얼 하려는 건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괜찮을까?”

“그럼.”

저번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기억 대신 현재가 있었다. 짐은 집중해서 전해지는 마음을 느꼈다. 그 곳엔 물론, 걱정과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건 하늘에 뜬 먹구름처럼 멀리 있었고, 따스하고 경이로운 감각 속에 감사의 마음이 손가락 사이에 걸릴 듯이 앞에 다가와 있었다… 일일이 이름붙이기 힘든 복잡한 생각과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지만 대부분이 짐에게도 익숙한 느낌이었다. 스팍의 말이 맞았다. 두 사람은 정말로, 거의 동일한 감정을 서로에게 향하고 있었다.

뒤엉켜 입을 맞췄다. 누가 먼저 고개를 들어 다가갔는지 알 길은 없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렇게 서로의 손을 엮은 채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잠에서 깼다. 짐은 자리에 누운 채로 흠뻑 즐겼다. 이 시간을 좀 더 생산적으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짐은 이대로도 괜찮았다. 나른하고 따스했고 만족스러웠다. 같이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니까 조금만 이렇게… 그러나 아주 잠깐만이었다. 그 동안 두 사람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약속도 나눴다. 둘 사이에서 혼자 앞서가지 않을 것, 스팍이 공식적으로 스타플릿 장교로 돌아오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을 것. 하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확실히 모를 일이었다. 스팍은 캘리포니아에 가서 심사를 보고, 짐은 엔터프라이즈가 이륙하기 전까지 아이오와에 계속 머물 테니 줄곧 헤어져 있는 셈이다. 그래도, 확실히 모르면 모르는 대로도 괜찮았다. 스팍은 스팍 대사와 같은 길을 간다는 사실을 끝내 탐탁치 않아했지만, 이번의 경우라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결정이라 할 수 있겠다고 끝내 인정했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었다. 엄마가 깨어날 때쯤 옷을 갈아입고 내려가서, 둘이 알아서 할 테니 더 주무시라고 얘기해 두었다. 그는 스팍을 공항까지 데려다줄 것이었고, 이미 아침식사도 데워놓았다. 일찍 일어났는데도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갔다. 머지않아 두 사람은 집에서 나와 스팍의 배낭을 뒷좌석에 싣고 플러리에 올랐다.

가는 길은 조용했다. 말없이 그렇게 앞만 보아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동이 트기 시작한 어슴푸레한 초원을 가로질러 달렸다. 두 사람 사이에 아직 더 알아보고 더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았지만, 짐은 지금까지 알아낸 것을 즐기는 데 집중하는 게 차라리 좋겠다 싶었다. 또 앞으로 궁금한 것을 알아낼 시간이 많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었다.

당연하게도 스팍은 곧 헤어져야 한다는 데 일말의 애틋함도 보이지 않았다. 공항 옆에 차를 세우고 나서 짐은 손을 내어 스팍의 손 위에 얹었다. 스팍도 손을 뒤집어 서로의 손바닥이 맞닿게 잡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은밀한 몸짓을 끝으로 스팍은 배낭을 집어 한쪽 어깨에 걸치고 차에서 나섰다.

잠깐이지만 겁이 조금 났다.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바로 이런 풍경이었다. 공항 터미널 바깥에서 마주쳤던 그 날 스팍은 혈혈단신으로 배낭 하나만 가지고 있었고, 짐은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자동차 옆이었다. 데자뷰처럼 느껴졌다. 이제 떠나버릴 스팍과, 그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채 남겨질 자신이.

남은 속이 끓는지도 모르고, 스팍이 손을 들어 예의 그 작별인사를 하는 손동작을 했다. 전에 그 벌칸어가 무슨 뜻인지 엄마한테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다. 아무튼, 당장은 관계없었다. 짐은 그에게 인상을 찡그리며 잡생각을 떨쳐버리고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스팍, ‘장수와 번영’ 이딴 건 하지 말아줄래? 우린 장수하기 전에 곧 보게 될 사이라고.”

“사실이야.”

스팍은 손을 내리고 몸을 기울여 창문 안을 넘어다봤다.

“제안하는 바라도 있어?”

좋은 질문이다. “‘곧 보자’고 하는 건 어때?”

“문법적 완성도는 부족하지만, 사실에 근거한 인사말이로군.” 스팍은 다시 손을 들어보였다. “머잖아 만나게 될 거야, 짐.”

“그래.”

짐은 이미 긴장이 풀린 후였다. 저 꽉 막힌 괴짜 녀석.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봐, 스팍.”

스팍은 짧게 끄덕이고,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짐이 바라보는 내내 스팍은 돌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그러리라고 바라지도 않았다. 뻔히 아는 걸 보려고 다시 뒤를 돌아다보는 행위는 별로 논리적이지 않으니까. 방금 막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진 건데도, 짐은 정말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2화, 사랑하는 사람 (1/3) →


역자의 말

원래 두세 편 분량인데 한 페이즈로 쭉 보셨으면 해서 끊지 않고 올립니다..^^

근래에 번역하면서 최고로 힘들었네요. 학교과제랑 병행해서 하느라^^;; 숙어가 다양하게 나오는 편이라 어려운 단어보다 훨씬 힘들더이다ㅠㅠ 나중에 천천히 퇴고를 해볼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몇 주 전만 해도 더워서 난리였는데 갑자기 쌀쌀해졌네요. 병신년 밝았다고 좋아하던 때가 어제였는데 임들께서는 세운 계획 달성 하셨는지 🙂 저는 <중력을 거스르다>를 완결하면 목표 하나를 이루게 되네요~ 연말까지 번역 계획도 꽉 세워두었고~(지킬 수 있을것인가)

벌써 4/4분기라고 무리하지 마시고, 날씨가 금방금방 가무니까 이럴 때일수록 좋은 거 드시고 잘 쉬시고.. 또 계속 뵈었으면 좋겠네요~


  1. “I’m sure it wouldn’t break me.”앞에서 it probably would tear him up, 나 죽어, 라고 생각해놓고 겉으론 괜찮을 거라 스팍을 안심시키는 이 늠름함을 보라지. 
  2. 원문에서 “It will be great.”라고 말한다. 짧은 문장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이번 21장을 전부를 통틀어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이다.
    맥락상 앞으로 둘이 함께할 날들이 굉장할 거라는 의미인데, 짧게 번역하자니 문장성분이 부족한 탓에 어떤 말을 넣어도 어색해서 사심 의역했다. 스팍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 짐의 유머러스한 성격으로 이 정도의 가벼우면서 의미심장한 표현이 걸맞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Advertisements
[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21 : 나와 같기를

[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21 : 나와 같기를”에 대한 12개의 생각

  1. 네뮤네뮤댓글:

    오늘도 잘 봤습니다~+ㅁ+ 영어고자에게 선녀님은 정말 선녀님이세요+ㅁ+ 이제 갓 시작한 커플의 두근두근함과 약간의 긴장감이 귀엽습니다! 이번편은 커크가 특히나 귀여웠던것 같아요~~ 사귀자마자 떨어지는데도 스팍은 역시 벌칸답게 로지컬하군요+ㅁ+ 다시 만났을때 스팍이 그리웠다고 말할까 궁금해집니다+ㅁ+

    1. 그 로지컬 어쩌구 하는 거이 땜에 제가 여기까지 와 버린것…★ 혼자 우왕좌왕하는 커크 기엽지요..^^ 다음 화를 기대하도 좋을 것 같사와~ 호호~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2. kajesuki댓글:

    아우웅~~ 정말 디테일이 무시무시하네요. 막 시작한 연인들의 어색함, 거리감, 불안함 등이 너무 사실적으로 다가왔어요. 특히 침대에서!! ㅎㅎ 그리고 마지막에 공항에서 헤어질 때 왜 제가 불안하죠?? ㅎㅎㅠㅠ 스팍이 금방 또 보자고 했으니 또 보겠죠. 긴 분량인데 끊지 않고 올려주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캄사합니다아아~~^^*

    1. 제가 말씀드렸지유.. 로맨스물이고 드라마라고~ 이 청량감있는 연애 이야기 설레어서 어떻게 책임질 것이며~ 이번 편은 요소요소 부분부분이 다 좋아서 중간에 끊어낼 수가 없었어요. 재미있게 보셨기를~~

  3. eran댓글:

    잘보고 갑니다! 앞부분은 복습인 것 같은데 한해 계획으로 뒷부분를 이어가고 계셨네요. 종종 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 계획보다는, 올해늘 넘기지 말자는 다짐에 가까웠지만^^; 암튼 다행히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으네요. 다음 편도 꼭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4. 리온댓글:

    서로 조심스럽고, 혼란스러워도 할 건 다 하네요ㅋㅋ 태연한 벌칸이 참 귀엽습니다~
    손키스나 텔레파시를 통한 교감이 참 애틋해서 이 픽과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특히, 텔레파시가 인간끼리도 가능하다면 훨씬 따뜻한 세상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근데 어머니는 둘 사이를 눈치 챈건가요? 그런듯 아닌듯 잘 모르겠네요ㅎㅎ
    선녀님 말씀대로 1인 1커크 보급이 실현된다면 우주평화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ㅋㅋㅋ
    이번에도 세심하고 애정어린 번역 감사합니다!
    급 추워졌더라구요 정말~~ 바쁘신데 더 몸챙기시고, 저도 오래 선녀님 글에 댓글달고 싶습니다!!><

    1. 둘이 밤에 자기 전에 멜드를 하잖아요..? 거기서 서로 거의 같은 감정이라는 거를 보고 앞부분 내용을 다시 생각해 보니 스팍도 겉으론 멀쩡한 척 하면서 속으로 설레어서 많이 마음이 끓었겠구나. 싶고… 귀여워서 죽을 거 같더라구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 1인 1커크 보급한 후에 커크가 외롭지 않게 1커크 1스팍도 보급을 추진해 보아요(??)
      제가 댓글 달릴 때마다 설레는 거 아시는지~ 저는 임들 덕분에 늘 설렙니다>< 하트를 받아도 설레고, 나 혼자만 덕질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걸 같이 보고 좋아하고 있구나 느낄 때면 흥이 돋아요. 룰룰~ 그러니 앞으로도 더 봐주세요~~

  5. 슈카댓글:

    사귀기 시작한 뒤의 조심스러우면서 간질간질한 분위기 참 좋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긴 편인데 번역 감사드려요. 끊어지지 않고 쭉 읽으니 더 분위기전달도 잘 되고 좋았던거 같아요. 감사합니다ㅋㅋㅋㅋ

    1. 제가 말씀드렸지유.. 로맨스물이고 드라마라고~ 이 청량감있는 연애 이야기 설레어서 어떻게 책임질(?) 것이며~ 호호 같이 보니 이렇게 좋으네요. 매번 봐주시니 저도 감사합니다~

처음 1회 관리자 승인이 있어야 댓글이 공개됩니다.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